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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에 기업들 '탈(脫)한전' 가속…전력시장 재편 신호탄

"산업용 전기요금은 무려 227%나 올라 상대적으로 큰 폭의 인상이 이루어졌다.."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에 기업들 '탈(脫)한전' 가속…전력시장 재편 신호탄

지난해 10월 24일,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는 전기요금을 9.7% 인상했다. 2000년 이후 주택용 전기요금이 42% 상승한 것과 비교하면, 산업용 전기요금은 무려 227%나 올라 상대적으로 큰 폭의 인상이 이루어졌다.

특히 대기업이 주로 사용하는 산업용(을) 요금의 인상 폭이 중소기업이 사용하는 산업용(갑)보다 크면서, 기업들은 ‘탈(脫)한전’ 흐름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탈한전’이란 기존처럼 전기 소매사업자인 한전을 통해 전력을 구매하는 대신, 발전사 또는 전력거래소를 통해 직접 전력을 구매하는 것을 의미한다.

2021년 전기사업법 개정 이후 재생에너지에 한해 발전사와 직접 전력을 거래할 수 있는 PPA(Power Purchase Agreement, 전력구매계약) 방식이 허용되면서, 탈한전의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

줄줄이 이어지는 기업들의 ‘탈한전’ 선언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 SK E&S는 PPA 시장에 진출한 지 2년 만에 계약 공급용량이 1GW를 돌파했다. 이는 원자력 발전소 1기와 맞먹는 전력 공급 수준이다.

SK어드밴스드 역시 계약전력 3kVA 이상인 기업에 허용된 전력 직접구매제도를 활용해, 발전사와의 전력직거래를 시행하겠다고 산업통상자원부에 신고했다.

한화에너지의 자회사 여수에코에너지는 500MW 규모의 구역전기사업 허가를 획득했으며, 포스코인터내셔널도 광양국가산업단지 내에서 동일 규모의 구역전기사업을 추진 중이다.

구역전기사업은 일정 지역 내 수요자에게 발전·송전·배전을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사업 모델로, 지역 내 전력 자립도를 높이려는 시도다.

공기업도 탈한전에 뛰어들고 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경기도 고양시 수도권철도차량정비단 부지에 액화천연가스(LNG)를 연료로 하는 9.4MW급 열병합발전소를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해당 발전소는 고양전철변전소(SS)의 전력 수요 일부를 자체 충당하는 데 활용될 계획이다. 사업 예산은 약 300억 원 규모이며, 2025년 말 착공을 목표로 2027년 준공을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기업들의 전력 직접조달 움직임이 확산되는 가운데,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제조업체 300개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0%가 전기요금 인상에 대응해 자가발전 또는 전력직거래(PPA) 등 대안적 전력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무방비 상태의 한전…경쟁력 상실 우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업계는 "전력시장 개방이 순식간에 이루어진 탓에, 한전이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간 한전이 독점해온 시장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충분한 논의와 제도 정비가 이뤄지지 않았으며, 정부와 국회의 전기요금 억제 기조 속에 한전은 요금 결정 권한조차 없는 상황이다.

특히 산업용 전기요금만 집중적으로 인상한 결정은 한전의 핵심 수익원인 산업용 고객 이탈을 촉진시켰다.

지난해 4분기 정부는 주택용, 일반용, 농사용 전기요금의 인상을 최소화하고, 산업용 요금만 평균 9.4% 인상했다. 이로 인해 한전의 적자 부담이 오롯이 산업용 고객에게 전가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요금 결정 권한이 없는 상태에서 전력시장의 경쟁을 논하는 건 현실성이 없다”며 “전력시장 선진화에 앞서, 먼저 한전에 자율적인 요금 결정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력시장 재편은 이제 현실

지금의 흐름은 일시적인 변화를 넘어 구조적 전환을 시사한다. 기업들은 더 이상 한전에 의존하지 않고, 전력 소비의 전략적 자립을 추구하고 있다.

탈한전은 기업 경쟁력 강화와 비용 효율화를 위한 필연적인 선택지로 자리 잡는 중이다. 이에 따라 정부와 한전은 변화된 전력시장 환경에 맞춘 새로운 정책과 역할 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다.